장군묘역은 제1, 제2, 제3묘역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군장성 355위가 안장되어 있다.
군별로 보면 육군 265위, 해군 51위, 공군 39위이다. 6.25전쟁 중 전사자는 ‘50. 9. 27. 경남 하동에서 전사한 채병덕 육군중장, ’50.11. 2. 함흥상공에서 적기 추격임무 수행 중 전사한 박범집 공군소장, ‘50. 10.29. 북진중 평안북도 묘향산 전투에서 전사한 박광혁 육군준장 등 14분이다.
제1묘역에는 육.해.공군 총사령관을 역임한 바 있는 채병덕 장군을 비롯하여 288위의 원로 장군들이 모셔져 있고, 제2묘역에는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 장군, 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 등 6분이 모셔져 있으며, 제3묘역에는 국방부장관을 역임한 이종찬 장군을 비롯하여 김홍한 육군대장 등 61위가 모셔져 있다.
이곳에는 대령이하의 장교, 5급이상의 군무원 등 4,518위가 안장되어 있다. 6.25전쟁 이전인 1949. 9.26.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중 적탄에 전사한 육군중위 양백호(제6묘역)를 비롯하여 대부분이 6.25 전쟁 전후와 월남전 (305위) 당시 순직한 분들이 모셔져 있다. 이곳 장교묘역에는 월남전의 영웅인 이인호 소령을 비롯하여 강재구 소령, 김경진 소령, 권영주 중위 등 군인정신의 귀감이 되는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다. 그리고 이 묘역에는 월남전때 종군기자였던 백광남 기자와 6.25때 윌리엄 F. 딘 장군 구출작전에 참여했다 순직한 김재현 철도기관사도 안장되어 있다.
이곳에는 부사관,병,6급 이하의 군무원등 48,488위가 안장되어 있다. 6.25전쟁 이전의 전사자는 270여 위이고, 6.25전쟁중 전사 순직자는 4만 여위로 묘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최초 안장자는 1957. 4. 2. 제11묘역에 안장된 육군하사 강덕수 등 192위이다.
휴전이후의 대간첩작전 전사자와 순직자는 8천여 위이며 파월 전사자는 4,341위로 주로 제2,3,8,19,21,26,48,51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이들은 64년부터 73년까지 십자성부대, 비둘기부대, 청룡부대, 맹호부대, 백마부대 용사로 파월, 젊음을 바쳐 6.25 참전국에 대한 보은을 하였고 자유와 평화수호에 크게 기여한 분들이다. 이곳 사병묘역에는 아직도 우리의 기억속에 생생히 살아있는 6.25전쟁 당시 백마고지 3총사였던 강승우 소위, 안영권 일병, 오규봉 상병을 비롯하여 양병수 상사, 이상득 하사, 훈련중 자신을 희생하여 부하의 생명을 구한 이원등 상사 등 군인정신의 귀감이 되는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다.
이 묘역에는 6.25 당시 자진 참전한 재일학도의용군 전사자 50위가 안장되어 있다.
6.25가 발발하자 일본에 거류하는 청년학도들은 동경, 대판, 구주, 북해도 등 각 지방에서 조국방위를 위한 의용군을 조직하는 한편 당시 미 극동지구 UN군 총사령관 “맥아더” 원수의 도움을 받아 동경 및 대판지역은 미 제1기병사단에서, 구주 및 기타 지역은 미 제3사단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마치고 1950. 9. 15부터 10.18까지 642명이 5차에 걸쳐 현해탄을 건너와 각종 전투에 참전하여 빛나는 전공을 남긴채 148명이 장렬히 산화하였다.
이곳에 안장된 50위는 전쟁 당시 일본 동경 대행사(大行寺)에 일시 안치되어 있었다가 그 후
재향군인회 주일지부(駐日支部)로부터 이들 영현의 국군묘지 안장요망이 있어 국방부 주관하에 1962. 11. 8.제16묘역에 안장하고 당시 시신을 찾지 못한 83위는 위패로 봉안하였다.
이 묘역에는 남과 북이 38선을 경계로 대치된 상황에서 1949년 5월 4일 북한공산군에게 불법
점령당한 개성 송악산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포탄을 안은 채 적진지에 뛰어들어 진지를 분쇄하고 산화한 10명의 용사가 잠들어 있다. 육탄10용사는 서부덕 소위, 김종해, 윤승원, 이희복, 박평서, 황금재, 양용순, 윤옥춘, 오제룡, 박창근 상사를 일컫는 말로 6번 묘역 맨 앞줄에 안장되어 있다.이들 육탄10용사의 명복을 빌며 위훈을 추모하고 그 뜻을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육탄10용사 현충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