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7월 경북 경주 출생으로 일본 사가중학교와 비행학교를 졸업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자원입대하여 학도병으로 지상전투에 참가하던 중, 공군에 조종사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공군 전투조종사로써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되었다.
공군에 편입된 박대위는 1952년 3월 공군소위로 임관하여 공군최초의 비행단으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던 제1전투비행단 제10전투비행전대에 배속되어 F-15무스탕 전폭기의 조종간을 잡게 되었다. 이후 5개월간 89회라는 경이적인 출격을 감행한 박대위는 원산, 고성, 간성, 신안주 등지에서 최우수 조종사로서 무수한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1952년 8월 2일 89회째 출격하던 날, 기상악화로 계획된 고도를 취하지 못하고 속초상공을 지나던 중 적의 대공포화를 맞아 장렬히 산화하고 말았다.
전투 조종사가 되면서부터 평소에 최소한 100회의 출격을 희망했던 박 대위가 목표를 눈앞에 두고 89회를 마지막으로 산화하자, 동료 조종사들은 다음날부터 그의 영정을 들고 교대로 출격하여 100회의 출격기록을 세워주는 눈물겨운 전우애를 발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