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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범장군순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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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범장군순의비

안병범장군은 광복 후 육군사관학교 제8기 특1반을 나와 부산호국군 103여단장 수도방위대 고문 등을 역임하다가, 6.25전쟁이 발발하고 수도서울이 함락되어 공산치하에 들어가자 이를 비통하게 여겨 1950년 7월 29일 서울 인왕산 남장대에 올라 장남 광호에게 ‘적과 싸워 국토를 지키지 못하는 자는 죽어 마땅함’을 유서로 남기고 순국하여 장군 제1묘역 232호에 안장되셨다. 안장군 순의비는 후일 군 동지들이 안장군을 추모하며 세운 비로서 비문에 새겨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병범장군순의비

생을 탐하여 뜻을 굽히는 무리들은 모래알 같이 많지마는 뜻을 위하여 주검을 취하는 이는 금옥같이 귀한 것이니 여기 정의를 지켜 생명을 버리신 이가 계심을 어찌 자랑스러이 여기지 않을까보냐
그는 실로 대한민국 국군 선구자 중의 한 분이신 안병범 장군이니
단기 4223년 8월 17일 서울에서 나시어 일찍 한국 유년학교에 입학하여 무사의 길을 택하였으나 나라의 대세는 기울어져 마침내 국치민욕의 날을 만나니 때에 21세라 비분한 생각을 참지 못한 채 그대로
일본으로 건너가 무사의 배울 바 닦을 바를 모조리 치른 뒤에 몸은 비록 그들 속에 들어 있어도 매양 나라 없는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그윽히 새날 오기를 기다리더니 드디어 민족 해방의 기쁜 날이 오매 때에 이미 56세라 몸은 비록 늙었으나 쓰이기를 기다린지라 분연히 육군대령에 임명된 이래 경남북지구 사령관 수도방위군 고문관 등으로써 국군장병들의 의범이 되셨더니 불행하게도 6.25 동란에 공산군이 남침하여 서울을 점령하자 시국의 그롯됨을 통탄함과 아울러 뜻을 참아 굽힐 길 없어 마침내 7월 31일 인왕산으로 올라가 국토통일을 하늘에 빌고 깨끗이 자기 목숨을 끊으시었다.
어허 일생은 비록 61년을 누리었으나 그 의지는 산하와 더불어 길이 전할 것이니 뒤에 남은 동지들은 울며 여기 비를 세우고 정의에 순절한 그의 행적을 영원히 기념코자 하는 것이다.

단기 4288년 9월 28일
국 군 동 지 일 동
이 은 근 지음
송 암 김 현 봉 씀
대 위 최 용 덕 세움

건 립 발 기 인
이기붕, 손원일, 이 활, 정일권, 이형근, 백선엽, 김정렬, 장택상,
김일환, 김형근, 이선근, 지청천, 유지원, 이응준, 신태영, 강문봉,
이종환, 유재흥, 강영훈, 원용덕, 오덕준, 김석원, 유승열, 최경록,
이형석, 박림항, 엄홍섭, 정래혁, 이대영, 한 밀, 장 흥, 김창규,
엄주명, 김응상, 김준원, 임선하, 건비공사담당자

2군사 공병부장
6관사 공병부장
2군사 정훈부원
대한석물 미술공업사

준    장 조성근
육군중령 김용준
육군대위 황철준
대    표 최해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