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베트남전쟁 기간 동안 특수 부대에 의해 많은 작전이 이루어졌다. 특수부대라 함은 사단의 공수특전대, 수색중대, 연대 수색중대 장거리정찰대, 해병 특공중대, 해군수송단대의 UDT를 말한다.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부대 창설

海軍은 1953년 9월 10일 제 1함대를 해체, 한국함대를 창설하였고 1955년 3월 1일 한국함대를 다시 개편하여 호송 및 경비작전을 위한 제1전단, 상륙작전을 위한 제2전단, 소해 및 기뢰전을 위한 31전대, 해상 군수지원을 위한 제 51전대와 최고도의 훈련태세 유지를 위한 함대훈련단으로 개편하였다. 더불어 海兵隊는 1948년 4월 15일 부대 창설 이후 10월 1일 창설된 海兵 제 1전투단을 1954년 2월 1일 海兵 제 1여단으로 승격시켰으며 1955년 1월 15일에는 海兵 제 1사단으로 승격, 창설하였다. 또한 1955년 3월 15일에는 海兵 제1사단으로부터 작전지휘권을 인수하여 독자적인 작전임무를 수행하였고 1959년 2월 26일에는 海兵 제 1임시여단이 창설되었다. 이렇듯 한국전쟁을 겪은 정부와 海軍 지휘부는 한국전쟁의 교훈을 바탕으로 상륙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따라 한국 海軍을 美 海軍 조직과 유사하게 개편하면서 상륙전 부대 창설을 구상하게 되었고 이에 부응하여 海兵隊 전력 증강과 더불어 海軍 내 상륙전을 담당하는 부대 창설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마침내 1954년 6월 23일 海軍 한국함대 예하에 상륙전대를 창설하였고 상륙전대 예하 해안대에 美 海軍 특수부대인 UDT를 본 딴 해상특수부대인 수중파괴대(장교 13, 부사관 16, 병 103명 등 총 132명)가 편성됨으로써 비로소 불가능이 없는 전천후 海軍 특수전부대가 태동하게 되었다.

※ (근거 : 해본기밀 제1762호, 단기 4287년, 서기 1954년 6월 19일) ※

당시 海軍 지휘부에서는 한국 UDT가 창설되기 전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 시 美軍의 전쟁수행 핵심전략인 상륙작전을 실시하기 위해 적 해안정찰, 첩보획득, 해상정찰, 내륙기습폭파공작, 해안장애물 제거, 기뢰탐색 및 소해, 유격대 및 요인호송, 특공대 철수지원 및 수중파괴 임무를 수행하며 큰 활약을 보인 美 海軍 UDT를 모체로 하여 창설을 준비하였다. 이에 따라 美 海軍 UDT의 선진 교육을 통한 작전개념 정립과 차기 국내에서 배출해야 될 UDT요원들의 교관 확보와 더불어 임무수행에 필요한 장비 획득이 우선시 되어 1954년과 1955년에 海軍 내 국가관과 군인정신이 투철하고 체력이 우수한 대원을 공개 모집, 美 8軍 주도의 영어시험을 거쳐 최종적으로 장교 3명과 사병 4명 등 총 7명을 최종 선발하기에 이르렀다. 海軍은 선발된 7명을 두 차례로 나누어 美 海軍 UDT과정(B-6)에 유학을 보냈고 장인표 대위 등 7명 전원이 소정의 美 UDT과정(B-6)을 수료하여 한국 海軍 최초의 UDT가 탄생되었다.

이들은 美 UDT 교육과정에서 습득했던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海軍 UDT 창설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에 돌입하였고 제2전단 예하 함정교육대(STU)에서는 부대 창설을 위해 한국 海軍 UDT 모집공고를 게시하였다. 지원 자격에 별다른 조건은 없었고 신체 건강한 海軍 장병은 지원이 가능했다. 또한, 수료 후 특별대우와 美國 유학기회 보장, 파격적인 주ㆍ부식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전후 복구에 여념이 없던 시절이라 海軍 내에서는 보급품이 제대로 조달되지 못했고 식사 및 의복 지원도 여의치 않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海軍에서 제시한 조건은 海軍 내에 최대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모집공고 후 300여명의 사병들이 지원하여 지원자들은 팔굽혀펴기, 달리기 등 1차 체력검정을 실시하고 다음날 해안대 방파제 앞 해상에서 2차로 수영 및 잠영 테스트를 거쳐 최종 80명이 선발되었다.

1955년 8월 5일, 한국 UDT 1기생이 입교했다. 海軍의 최초 UDT 교육은 교육훈련에 필요한 각종 교재와 장비 등이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체력단련과 수영위주로 제2전단 예하 함정교육대(항무) 주관으로 시작되었다. 비록 훈련에 필요한 장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지만 美 UDT 교육과정과 유사한 내용으로 구성하여 체력, 지옥주 훈련(극기훈련), 구보, 수영, 잠수 등의 다양한 교육훈련을 13주간 실시하였고 특히 이때 실시한 잠수(Skin SCUBA) 교육은 국내 잠수 역사상 최초로 기록되어 한국 잠수 역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매일 계속되는 강한 훈련에 생도들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美 海軍 UDT과정을 수료한 7명의 교관들은 UDT의 혼과 열정을 심어주기 위해 美國 UDT과정보다 더 강한 훈련으로 생도들을 교육하였고 교관들의 기대에 부응한 병조장 이만수 등 26명은 마침내 1955년 11월 9일, 한국 海軍 UDT 1기가 탄생되기에 이른다.

1955년 11월 9일, 한국 海軍 UDT 1기 수료식과 더불어 교관 7명과 한국에서 탄생된 UDT 1기생 26명, 총 33명을 창설 인원으로 장인표 대위(해사 5기, 美 UDT 11기, 해군대령 예편)를 초대 UDT대장으로 대한민국 해군 역사상 유일무이한 특수전부대인 수중파괴대(UDT)가 창설되었다. 당시 수중파괴대는 상륙전대 예하 해안대(해변단)에 소속되었다.

※ 1955년 11월 9일 한국함대 해상특수부대 “ 수중파괴대(UDT)창설
※ 1955년 11월 9일 한국함대 해상특수부대 “ 수중파괴대(UDT)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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